2025 회고
2024 년 넓은 세상을 보고 싶던 내게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발을 내딛을 정도의 두려움이 섞인 도전이었다. 2025 년은 영국 생활에 안온함을 느끼기 시작하며 편안히 발을 넓혀 보았다. 냉탕에 적응이 된 듯한 느낌과도 비슷하다.
2024 년 영국 석사로 유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고, 어학 연수·프리마스터·바로 석사 중 가장 어려운 도전이었기에 바로 석사에 도전했다. 넓은 세상인데 왜 석사인가 싶을 텐데, 내게는 모국어를 쓰지 않는 무연고지의 다른 문화권에서 경쟁하는 것이 내 세계를 구조적으로 부수는 선택지였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영국 등의 유럽을 거닐었다. 스위스에서는 트레블 패스를 사서 기차 타다가 아무 곳에서나 내려서 걷고, 호스텔에서 만난 콜롬비아 형님과 알프스 산맥을 하이킹했다. 무작정 브라이튼에서 세븐시스터즈를 통과해 이스트본까지 걸어보고, 비 맞으면서 눅눅한 밤의 런던을 걷고, 에딘버러에서는 밤에는 칼튼 힐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고, 낮이면 발길 닿는 대로 바다와 숲길을 거닐었다. 아…! 영국 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건지 에딘버러 갈 때 신분증을 아무 것도 안 들고 가서 숙소 체크인을 못할 뻔했다. 파리 가는 비행기를 놓쳤다,,, 그리고, 그 날 장염에 걸려서 배가 너무너무 아팠다. 겨우 에펠탑을 보고 다음 날 돌아오는 이상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 다니면서 참 나를 많이 알았다. 책상 앞에서 많을 땐 한 달에 200 시간씩 때론 하루에 11 시간 이상 씩 컴퓨터를 하다보면 머리가 어지럽혀진 방이 된다. 이 때 떠나는 여행은 그간의 소득을 흡수하는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기차 안에서 커피 한 잔하면서 글 쓰는 시간이 참 고요히 행복했다. 인턴십에도 도전했다. 음악 플랫폼 개발에도 지원해보고, Research internship 에도 지원을 해보았다. 정말 가진 것 다 끌어서 시도했다. Research internship 1 차를 통과해서 2 차까지 갔다가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모두 떨어지게 되었지만, 스스로는 내가 정말 열심히하면 최종 면접까지는 가볼 수 있는 역량이 내게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Crossfit 을 시작해서 꾸준히 다녀보았다. 토할 때까지 신체를 몰아세워보기도 하고, 데드리프트를 첨으로 120kg 까지 들었다. 스쿼트도 100kg 까지 처음으로 들었다. 체중이 10kg 증량 되었는데 배가 나오지 않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세션이 끝나면 너무너무 힘들어서 집에 가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쉬기도 했다. 멍청하게 몸을 혹사 시켰지만, 해외 생활하면서 외롭지 않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히 공부 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프로그래밍 대회인 데이터 분석 해커톤을 나가서 수상을 했다. 영어가 부족한데 영국인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니 온전히 대화를 하는게 힘들었다. 팀 내 유일한 개발자였고, 데이터 분석도 처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발하는 것보다 점심 먹으면서 대화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용기내어서 신청한 대회여서 그만둘까 매일 아침 생각했는데 5 일간 잘 참여하고 협업 끝에 상까지 받으니 참 뿌듯했다. 실력이 있을까 스스로 고민이었는데, 이는 부딪히면 드러남을 알았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태국, 인도, 영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협업과 경쟁을 했다. 각자 다른 기술, 배경, 문화를 조율하는 것, 인지적 피로가 쌓인 상황에서도 유일한 소통 방식은 영어와 코드 뿐이며 클라이언트 앞에서 우리 서비스를 발표하는 경험은 어려웠다. GPU programming 수업은 강의 계획서에 코딩 실력이 없으면 도전하지 말라는 것에 반발심이 생겨서 신청했다. 학기 말에 죽을 뻔했다. 강의를 따라가는 게 압도적으로 어려웠다.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다. 인도 친구들과 자정 즈음 넌 성공했냐..?란 질문에 싱긋 웃으며 고개 절레절레하는 게 별것 아닌데 추억이다.
무려 졸업 학점의 1/3 을 차지하는 Dissertation project 는 주제 선정부터 경쟁이었다. 먼저 교수님께 연락을 해서 내 어필을 하고 사전 미팅도 해야 했고, 감사하게도 원하는 1 순위 주제가 선정이 되었다. 열정 있는 지도 교수님을 만나서 치열하게 보낸 여름이었다. 일주일이 너무 짧았다. 쉬는 나를 가만 두지 못하게 날 압박했었다.
감사하게도 석사가 마무리 되고 나서 졸업 논문을 저널에 제출할 기회가 허락이 되어서 유럽 여행 다니면서 짬짬히 논문을 쓰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무리해서 2026 년 1 월에 드디어 제출했다…!
한인 교회에서 찬양 인도와 기타로 섬겼다. 내 인생 살다가,,, 찬양 인도를 하게 될 줄 몰랐다. 가만히 예배를 드리는 것과 인도자의 영역은 다른 영역임을 알았다. 음이탈도 하고 어려운 곡을 골라 쩔쩔 매기도 하고 시험 기간과 겹쳐서 잠을 잘 자지 못하고 겨우 준비해서 참여를 했었다. 취미로 하던 기타를 처음으로 합을 맞춰보니 너무 부끄러운 내 실력을 마주했다. 예배 찬양이 끝나면 손가락 마디가 아파서 손을 매번 털었다. 대학교 때 배운 음향을 잘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음향 엔지니어로 돕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곳에는 그런 필요가 없었다. 다만 예배와 찬양 전후에 잠깐씩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마지막으로, 한인 교회에서 받은 제자훈련과 예배의 시간이 해외에서 믿음을 지키고 자라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실패는 덧칠이 되어 선명함이 된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글을 적는 오늘의 난 충만하다. 앞서 언급하지 않은 영역들에서도 내 부족함은 전방위에 걸쳐서 드러났고, 양껏 부끄러웠다. 어두운 방 안에 있지 않길 부단히 노력했으나 결국엔 어두움에 머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왠지 모를 근자감이 있다. 처음엔 왠지 모를 이 충만한 믿음이 결과에서 오는 것일까 했는데 실패에서 온 것임을 깨달았다. 부단히 실패했고, 부단히 부끄러웠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갈 것이 기대가 된다. 더 이상 날 의심하지 않는다
Slingshot (중력 보조 기동) 내가 가진 연료 (의지·시간·자원) 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속도와 방향을, 더 큰 천체의 운동과 중력장을 빌려 획득하는 기동.
내게는 날아갈 수밖에 없는 상태에 나를 두는 선택을 지속한 것을 의미한다.
2025 년은 Sling shot 을 시도한 해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무수한 실패는 기대를 벗어나는 자라남을 허락한다. 꿈이 있다면 나아가면 된다. 소망에는 자격이 필요 없다.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통념은 통념일 뿐이다. 마주하는 두려움의 크기만큼 용기는 생길 것이라, 때가 되면 드러날 것이니 무심히 찬연하자.
이 연단을 통해서 내 안에 잠들어있던 거인들을 마주했다. 문인으로 책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며 어두운 밤 주황 조명 아래에서 글을 쓰고, 때론 강인한 육체를 탐하며, 엔지니어로서 땀 나는 열심과 고요히 커피를 홀짝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삶, 좋은 음악이 무엇인지, 좋은 소리는 무엇인지 고민하며 보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이런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이들은 눈을 감은 채로 생을 마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떠난 자리에 재만 남을지라도 하루하루를 불태우며, 서서 죽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이 참 야속해서 무료함과 편안함보다는 긴장감과 자라나는 충만함이 좋다. 아마 내 인생은 평생 바쁠 것임을 이제 안다.
무언가를 붙잡고 싶다면 오히려 느슨해야 하고, 결연한 의지보다 무미하게 이어지는 발걸음이 더 단단하다. 당장 눈앞의 것보다 먼 미래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킬 수 없는 상실은 더 크고 깊게 거대하게 아프다. 잠시의 뽐냄보다 사랑하는 작은 것들을 지키고 싶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상을 품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온기를 지키는 산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세상에는 문제가 참 많지만, 모든 문제를 풀 필요는 없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는 ‘어떻게 풀 것인가’보다 ‘누가 이 문제를 풀기로 선택했는가’를 보게 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넓은 세상은 단순히 여행에 있지 않고 책 속에 있으며, 깊어지는 관계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여정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넓은 세상을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나는 정도를 걷고 싶다. 정직한 시간에는 치밀함이 깃들어 있고, 깊게 빚어진 것은 결국 날카롭다. 선택지를 억지로 나눌 필요도, 하나에 스스로를 가둘 필요도 없다. 무엇이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부동의 태로 나를 두고자 한다.
우리는 결국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내 서재에,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만 있어도 충분한 삶이길
ps. 언젠가 간사님께서 중국 여행을 앞두고, 너희는 이 순간을 평생에 잊지 못하게 될 것이라 말을 한 것이 떠오른다. 이 시기에 다른 많은 선택지가 있을지 모르나, 이 기억은 너희 평생에 남을 것이다. 내게 이 1 년 반은 그런 시기가 되었다
아 석사도 1st 로 졸업해서 너무너무 기쁘다 !!!!!